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스터리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스터리

Posted at 2020. 12. 17. 07:56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스터리 

 

김형욱 암살 사건

이 사건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0년대의 미스터리 사건입니다.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스터리]

김형욱은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 이인자의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미국으로 망명하고, 박정희 정권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사생활까지 공개하며 망신을 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후, 1979년에 갑자기 실종된 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에 빠져버렸습니다. 이 글은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중에서도, 김형욱이 어떻게 죽었나 하는 미스터리에 대해 다룹니다.



김형욱 실종 사건

[중앙정보부장 당시]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스터리 / ⓒ kdemocracy.or.kr

'김형욱'은 공포의 삼겹살, 남산 멧돼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과격하고 포악하게 박정희 정권 유지를 위해 못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1963년 중앙정보부장에 오른 후 1969년까지 국내 대형 의문 사건에 개입되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얼마나 더러운 짓을 했는지, 모든 것을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미국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정권에 배신당하고 버려졌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1979년 갑자기 그가 실종되었습니다. 박정희의 치부를 적은 원고에 대한 원고료로 거액을 줄 테니, 만나서 상의하자는 제의를 받고 프랑스로 갔다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는 1979년 10월 1일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는 사라졌습니다. 아무 흔적도 사라진 사건이지만, 당시에는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노골적으로 언론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형욱 암살 사건의 죽음은 2005년에 이르러서야 진실규명 위원회에서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국에서 폭로 중인 모습]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스터리 / ⓒ Unknown 

 

김형욱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다음 정보부장인 '김재규'가 박정희 저격 시해 사건으로 사형당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명령해서 김형욱을 처치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가장 확실한 인물이 사라진 것입니다.

또한 현지에서 김형욱 납치를 지휘했던 '이상열'이 보안을 이유로 죽을 때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겠다고 버틴 이유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형욱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서 아무런 수사도 진행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미궁으로 빠진 사건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김형욱 사망설은 충격적이게도 사체 닭모이설입니다.

2005년,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에 참여했다는 한 사람이 공개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김형욱을 납치했으며, 마취해서 근처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그 후, 해머밀이라는 대형 분쇄기에 그를 산채로 집어넣었다고 했습니다. 그를 머리부터 기계에 밀어 넣었는데, 그 분쇄기는 닭모이를 만들기 위한 것이므로 시신을 닭에게 먹이로 준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역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러 사망설과 그 후

 

[충성한 김형욱과 그를 버린 박정희]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스터리 / ⓒ Unknown 

 

그다음 김형욱 살해설은 그 외에도 많지만 어느 것 하나 직접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김대중 납치 사건 때처럼 국내로 납치당해서 불러들인 뒤 죽였다는 설도 있고, 스위스의 제네바 근처에서 살해하고 시신을 화물기에 넣어 한국으로 보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 외에, 정부의 사주를 받은 현지 마피아나 조직폭력배에 의해 살해된 후 버려졌다는 설도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로 간 후 살해당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모두 어디 어디에서 들었다는 내용들이어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한 뒤, 그에 대한 조사는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했었습니다. 그는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에 대해 김재규를 강하게 조사했지만, 김재규 역시 아무 말을 안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90년 최종적으로 사망 선고가 내려지며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바뀝니다. 그러나 김형욱이 박정희의 치부가 담긴 회고록을 출판하려다가 결국 보복을 당한 것임은 역사적으로 대부분은 인정하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김형욱 암살 사건의 미스터리

 

[중앙정보부장 당시]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 - 김형욱은 어떻게 죽었나? 미스터리 / ⓒ Unknown 

 

어쨌든, 진실조사위원회에서도 조사하긴 했으니 결과 발표가 있긴 했습니다. 당시 발표를 보면, 김형욱 암살 납치 사건은 사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있던 중앙정보부 요원 세 명이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고, 동유럽 출신 2명에게 10만 달러를 주고 돕게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날 김형욱은 이상열 프랑스 공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그래서 둘은 만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 정보부 요원이 나타나서 그를 납치했으며, 권총으로 죽인 뒤 낙엽으로 덮고 철수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건의 지휘자 이상열은 당시 사건의 추궁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지금에는 김형욱 납치 암살 사건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그냥 실종일 뿐이었습니다. 아무도 이 사건을 조사할 수 없으니 정부가 실종이라면 그냥 실종이었던 것입니다.

진실은 암살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실종자일지라도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미 살해당한 그는 이 재판에서 국가보안법, 반공법, 형법에 따라 징역 7년 형을 받았습니다. 죽은 자에게까지 철저하게 응징했던 것입니다.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는 박정희를 욕했기 때문에 뒤집어 씌워진 죄였을 뿐입니다. 1996년 재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니 이 재판은 거짓 재판입니다. 당시에는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였으므로 이런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출처: https://kiss7.tistory.com/2076 [키스세븐]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