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

Posted at 2020. 12. 8. 08:11 | Posted in 잡동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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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

2008년 여덟 살 아이를 강간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은 전과 17범의 추가 범행을 하고도 뉘우치는 자세가 없어서 더욱 충격을 주었던 사건입니다.



/지식블로그 kiss7.tistory.com/ 조두순 사건 정리 / ⓒ Unknown  

 

[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

2008년 12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있었던 8세 아이 강간 성폭행 사건이 '조두순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법체계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왔을 정도로 큰 영향이 있었습니다. 이에, 조두순 사건을 정리하고 전과 형량, 판결 결과, 피해자 근황 등도 정리합니다.

아동 성범죄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과 대책이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조두순 사건 정리 요점

[ 영화  소원의 한 장면] 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 / ⓒ 소원 

 

2008년 12월 11일 아침 8시경,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파렴치한 아동 성폭행 강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만 8세의 아이는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중이었습니다. 원곡동의 어느 교회 앞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면서 끔찍한 조두순 여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뜬금없이 접근해서 교회에 다니냐고 물어본 그는 근처 교회로 아이를 유괴했습니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로 아이를 강제로 끌고 들어간 그는 아이에게 강압적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거부하자 얼굴을 폭행하고 뺨을 물어뜯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목까지 졸라서 아이는 결국 기절했습니다. 그러나 인면수심의 이 범죄자는 끔찍한 성폭행 강간을 더 했습니다. 그래 놓고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아이에게 차가운 수돗물을 틀어놓고 가버립니다. 12월의 차가운 물에 젖어 깨어난 아이는 기어 나와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건물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아이는 신체 일부의 기능 80%가 상실되는 혹독한 피해를 입었고, 8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상처도 입었습니다. 조두순 사건을 정리하자면, 평생 고통을 받아야 할 이런 피해가 계속 발생하도록 그냥 놔둬야 하냐는 것에 있습니다.



조두순 성폭행 강간 사건 이후

[사이코패스 판단 기사] 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 / ⓒ hani.co.kr 

 

2008년 한겨울에 발생한 이 사건은, 다음 해 2009년 1월 강간상해죄로 기소되었습니다. 피해자가 범인을 확실하게 지목했고, 현장에 지문이 남아 있었으며, 범인의 옷과 운동화에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되면서 확실하게 범인이 밝혀진 것입니다.

 

참혹하고 끔찍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1년 동안 국민들도 모른 채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9월, TV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드디어 국민들이 알게 됩니다.

처음엔 나영이 사건이라고 불렸으나,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아니라 피해자의 이름으로 기록되는 문제점을 질타하는 국민이 늘어나면서 조두순 여아 성폭행 강간 사건으로 바뀌었습니다. 짐승 같은 범죄 행위가 드러나자 국민들은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피해자의 가정이 생활보호대상가정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서 치료에 보태 써달라는 운동을 벌였고, 정치권과 법조계에 확실하고도 단호한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조두순 사건 판결과 형량

[ 영화  소원의 한 장면] 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 / ⓒ 소원 

 

1심 조두순 재판에서 그는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다른 범인이 저지른 범행이고 자신은 도우려다가 억울하게 재판을 받는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서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당시 조두순의 나이는 56세였습니다. 나중에는 장기형을 받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심신 미약 상태였다며 감형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심신미약이란 것이 문제가 됩니다. 당시 술을 마셔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감형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술을 마신 상태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럼에도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죄를 봐주는 경우가 자주 있어왔습니다.

그는 무기징역형을 구형받았지만, 1심에서 징역 12년 선고를 받았습니다. 감형의 이유는 나이가 많고 심신 미약이 참작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두순이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를 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번이나 형량을 깎아달라는 항소가 있었으나 국민들의 분노가 너무 거세어 재고의 가치조차 없는 사건이 되었고, 당연히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이후 청송교도소와 포항교도소에서 12년간의 죄수 생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조두순 사건 재판 정리

[조두순 형량 논란 기사] 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 / ⓒ insight.co.kr 

 

이 판결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치욕스럽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후유증이 심했습니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 이렇게 적은 형량은 각종 감형제도로 몇 년 만에 금방 출소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 아이의 평생이 망가졌는데, 가해자는 겨우 몇 년으로 봐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검찰과 법원에 대한 분노도 들끓었습니다. 검찰은 강간상해로 기소했는데, 당시 성폭력특별법의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상해죄는 무기 또는 7년 징역형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보다 형량이 적은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의 강간상해로 기소한 것입니다.

조두순 사건 정리를 위해서는 당시 법적 문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당시 한국에서의 해당 범죄에 대한 감경은 심신미약이 인정되는 순간 최고 7년~15년밖에 판결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당시 판사는 법 규정에서는 그게 최고였다고 하지만, 심신미약을 인정했다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검찰의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당시 판사의 증언에 의하면, 범인이 만취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에 반해서 검찰이 이에 대한 반박을 제시해야 했다고 합니다. 즉, 검찰이 항소도 하지 않다 보니 반박 제시에 따른 감형 철회가 이루어질 기회도 없이 그대로 선고가 끝나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엉망진창, 조두순 사건 정리

[검찰은 왜 항소를 포기했나 기사] 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 / ⓒ newstomato.com 

 

이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앞서 조두순의 형량이 12년밖에 안 되는 문제도 있었지만, 수사과정에서의 인권 문제와 수사 후의 2차 가해 등의 치부가 그대로 다 드러난 것입니다.

 

검찰은 녹음이 잘 안 됐다며 어린 피해자에게 당시의 일을 5번이나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고, 병원 조사 때는 가림막을 설치하지 않아서 피해자의 얼굴이 노출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당시 피해자의 질액을 채취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정작 재판에서는 어디 있는지 몰라서 증거로 제출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피해자 가족에게 4천만 원의 보험금이 지급되자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제외하고 이미 지원된 긴급치료비를 내지 않으면 전세금 가압류를 하겠다는 통지가 날아와서 논란이 터졌습니다. 일용노동자인 아버지와 가사도우미인 어머니가 겨우 한 달 2만5천 원의 보험을 든 것이 전부였는데 안산시에서 이런 행정처분을 내리자 전 국민의 분노가 또 터졌습니다. 후에 안산시는 이를 철회했습니다.

 

이후에도 피해자의 아픈 상황을 생각치 않고 언론과 창작품에 마구 인용하는 사례가 있었고, 한 유튜버는 자신이 조두순 아들이라며 아버지를 욕하지 말라는 허위 방송을 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남의 아픔으로 장난을 치는 짐승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이후의 변화와 피해자 근황

[당시 현장 검증 기사 화면] 조두순 사건 정리 - 전과 형량, 조두순 판결 경과, 피해자 근황 / ⓒ YTN 

 

한국 사회는 이 사건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아동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영향으로 15년 이내로만 되어 있던 범죄의 상한선을 30년으로 늘렸고, 가중처벌이 가능한 범죄는 50년까지 형량을 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더불어 아동 청소년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도 폐지되었고, 전자발찌의 착용기한을 30년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조두순이 출소할 경우 지정된 한정은 전자발찌 7년, 얼굴 등 신상정보 공개 5년이 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마지막으로... 당시 나영이로 알려진 아이의 아버지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피해자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2020년 수능을 무사히 치르고 코로나19도 잘 견뎌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이 학교를 잘 다녔고, 의대에 갈 꿈을 가졌다고도 합니다.

 

조두순 사건 정리에서 다시 한번 적어두고 싶은 것은,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았다면 법 개정도 없었을 것이고 관심도 받지 못 할 뻔했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 외에도 남의 아픔을 가지고 조롱하며 함부로 말하는 나쁜 국민이 있어왔지만, 절대다수가 착한 국민일 때에만 사회가 흔들리지 않고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출처: https://kiss7.tistory.com/2071 [키스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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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Posted at 2020. 11. 30. 11:32 | Posted in 잡동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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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간첩 원정화 간첩 사건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이명박 정권 시절 1호 탈북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원정화는 북한을 위장 탈북한 특수훈련 여간첩이었다는 것이 당시의 발표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녀와 사귀던 황중위(황주용)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판 마타하리라는 원정화 간첩 사건은 논란에 휩싸여왔습니다. 당시 수사가 아무래도 이상하고 의문이 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을 정리하고 사건 기사를 추적했습니다.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사건이란

 

[특수훈련 여간첩이라던 원정화]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JT BC 

 

당시 정부의 발표만을 가지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북한은 '원정화'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1989년부터 남파공작원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녀는 1992년 의병 제대를 한 후 1998년 중국으로 가서 보위부 공작원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후, 2001년 그녀는 한국 사업자의 아이를 가졌다고 하고 결혼해서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 딸을 낳은 후 2002년부터 중국을 왕복하며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임무는 한국의 주요 국가시설의 위치를 파악하고 탈북한 '황장엽' 조선로동당 비서를 찾아낸 후 대북 정보를 수집하는 2명의 요원을 암살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여간첩 원정화 조작 증거 기사]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newstapa.org 

 

북한에서 온몸 자체가 살인도구로 훈련받았다는 그녀는 김 소령이란 사람과 교제를 했고, 2006년부터는 군부대를 다니며 안보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황주용' 중위입니다. 원정화는 황중위와 사귀면서 군부대와 국정원의 국가시설과 100여 명의 장교 명단을 확보해서 북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08년 적발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받았으며, 그녀와 사귀던 황중위는 불명예 전역을 당한 후 징역 3년을 살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각종 방송 등에 출연하며 북한 이야기를 하는 방송인으로 유명해집니다.



원정화와 사귄 황중위의 호소

 

[진심으로 사귀다가 징역을 산 황 중위]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JT BC

 

그런데 2017년 황주용의 아버지가 재조사를 해 달라고 청원을 올리면서 다시 논란이 터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보수주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조작 사건이 계속 터졌는데, 당시 2008년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국민적인 저항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관심을 돌리려고 터트린 간첩 사건이 아니냐는 논란입니다.

 

당시 기록 영상을 보면 9일 동안 계속 반복되는 조사 압박이 있었고, 수사관은 원하는 답을 하지 않으면 간첩죄가 적용되어 무기징역 또는 사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황중위의 아버지는 이명박 - 박근혜 정부는 계속 조작 사건을 터트렸기 때문에, 당시에는 저항해봐야 소용없어서 이제야 다시 나선다고 말했습니다.



[황주용 측의 요구]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joins.com 

 

영상을 보면 "원정화가 그렇게 진술했으니까 제가 그에 맞춰서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게 답을 하라는 말씀입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황중위는 9일째가 되어 간첩이라는 것을 알고 정보도 제공했다는 진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사건이 있기 10개월 전 사건 때문입니다. 당시 그녀는 사랑을 증명하려면 약을 먹으라고 했고,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했기에 정말 먹었다가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조사에서 원정화는 간첩이라는 것을 알고는 괴로워서 자살 시도를 했다고 진술했던 것입니다.



억울한 황주용 간첩 사건

 

[원정화의 의붓아버지 인터뷰]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뉴스타파 

 

나중에 그는 강압 때문이었다고 밝혔으나, 정작 재판에서는 당시 그를 신문한 영상 기록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볼펜을 집어 던지고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라고 협박했던 시간의 취조 영상이 삭제된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더구나 그가 재판에서 허위 자백을 주장한 후부터 갑자기 감옥에 갇혀 있는 원정화에게서 편지가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반성하고 그냥 잘못했다고, 변호사 말에 잠깐 흔들렸다고 빌어라"는 내용의 편지는 황중위가 신문 과정에서 협박받은 내용까지 그대로 베끼듯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간첩 조작 사건인가]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donga.com 

 

경찰, 검찰뿐 아니라 군대와 국정원까지 합세한 합동수사본부의 원정화 간첩 사건 조사 후에도 간첩 사건은 이상했습니다. 당시 군 사법판사의 인터뷰 내용에 의하면 "그 전부터 쭉 지켜보고 있다가 그 시점에 맞춰서 터트린 것 같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무사가 주도했다는 의혹이 생기는 것입니다.

 

당시 황중위는 원정화가 간첩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재판 중 갑자기 수감 동기가 증인으로 나서서 간첩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겨우 10일 동안 같이 수감된 그가 이렇게 나서는 것 또한 이상한 일입니다.



1호 탈북 여간첩 원정화 간첩 사건

 

[억울한 일을 당한 보안대장]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뉴스타파 

 

그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취조를 하는데 첫날부터 회와 소주가 들어와서 마시며 조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조사관들이 김현희처럼 살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한 달에 40만 원씩 도와줄 테니까 조용히 살고 있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이상한 것은, 그녀는 안보강연을 하며 북한의 실상을 밝히고 다녔는데... 원정화와 그녀의 계부가 통화한 녹취를 들어보면 그녀는 보위사령부가 뭔지도, 7사 방첩대가 뭔지도 몰라서 아버지에게 물어봤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그녀가 왜 스스로 간첩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을까요?



[1호 탈북 여간첩 사건]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hani.co.kr 

 

2014년, 그녀를 최초로 내사했던 '소진만' 전 보안수사대장의 증언을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는 30년 넘게 대공사건만 수사했는데 원정화 간첩 사건처럼 이상한 사건은 처음 봤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직접 e메일도 만들 줄 모르고 몸에 특수훈련 흔적도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절대로 원정화는 한국판 마타하리가 아니라면서, 그녀는 북한 지령을 받고 내려온 것도 아니고, 당시 국정원에 그녀의 존재를 의뢰했더니 협조자라고 말하더라고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간첩을 잡은 게 아니라 만들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원정화와 황중위 간첩 사건 의혹

 

[1호 탈북 여간첩 원정화]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뉴스타파 

 

그런데 더욱 의문에 빠지는 것은 그런 그녀가 왜 스스로 간첩이라고 주장하며 황중위까지 간첩으로 몰아넣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1호 탈북 여간첩 재판으로 언론이 떠들썩할 때 그녀는 상고심도 하지 않고 자신이 간첩이 맞다고 하고 있는데 황중위는 억울하다고 하니 말입니다.

 

한편 원정화 간첩 사건이 조작이라고 판단했던 소진만은 그때 기무사령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기무사의 허위 진정서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자, 다음 해 그는 보복 발령된 뒤 소외된 살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억울하다며 자살 시도를 했었는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보수주의  정치 의 문제점]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간첩 사건 - 황중위(황주용) 논란 / ⓒ donga.com 

 

그런데 의혹으로 추가되는 것들이 더 있습니다. 당시 원정화는 7명의 현역 군 간부에게 접근했지만, 구속 기소된 것은 오직 황중위 한 명뿐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북한의 지령을 전달했다고 원정화가 지목했던 의붓아버지 김 씨는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당시 수원지검장에게서 간첩활동을 도운 혐의로 12년을 구형받았고, 그 후 이 사건은 검찰의 증거 조작이 있었냐는 논란이 있기도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판 마타하리라는 원정화는 스스로 유죄를 인정했으니 더욱 이상한 사건입니다.

 

황중위와 원정화 간첩 사건은 아직 정확히 밝혀진 진실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위에서 각자의 주장을 정리했지만, 진짜 진실은 정부의 재조사만이 해결점이라는 것만 확실합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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