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광해군은 왜 이름에 조, 종을 붙이지 않았을까? (묘호와 군호)연산군, 광해군은 왜 이름에 조, 종을 붙이지 않았을까? (묘호와 군호)

Posted at 2020. 11. 20. 11:18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연산군, 광해군

 

 

연산군, 광해군은 왜 이름에 조, 종을 붙이지 않았을까? (묘호와 군호) /ⓒ history.go.kr 

 

[연산군, 광해군은 왜 이름에 조, 종을 붙이지 않았을까? (묘호와 군호)]

 

우리는 세종, 영조, 고종 등 두 글자의 왕이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연산군과 광해군의 왕이름은 세글자이며 군으로 끝납니다. 즉 광해군, 연산군은 군호만 있고 묘호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연산군과 광해군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세한 과정은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광해군, 연산군의 묘호과 군호

 

'군호'는 왕의 아들일 때 주어진 이름입니다. 왕의 아들조차도 신하들이 함부로 이름을 말할 수 없기에 수양대군, 연산군, 광해군 등으로 불렀습니다. 

 

참고로 연산군의 '존호'는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이고, 광해군의 '존호'는 체천흥운준덕홍공(體天興運俊德弘功), 신성영숙흠문인무(神聖英肅欽文仁武), 서륜입기명성광렬(敍倫立紀明誠光烈), 융봉현보무정중희(隆奉顯保懋定重熙), 예철장의장헌순정(睿哲莊毅章憲順靖), 건의수정창도숭업(建義守正彰道崇業) 등 매우 많습니다. 

728x90

그런데 광해군과 연산군은 군호와 존호는 있지만 묘호도 없고 시호도 없습니다. 반면 세종은 묘호가 세종(世宗)이고 시호는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입니다.

그러므로 이쯤이면 묘호의 의미만 알면 연산군과 광해군의 왕이름에 왜 종, 조가 붙지 않는지 확인이 될 것입니다. 

 

'묘호'는 임금이 죽은 후에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붙이는 이름입니다. 즉, 후대가 왕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묘호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을 하던 중에 반란에 의해 쫓겨난 왕들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죽었을 때는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왕자 때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써 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조, 정조의 원래 묘호는 영종, 정종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종 때 영조와 정조라고 이름을 고쳤습니다. 후대가 과거의 왕들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 묘호라는 것이고, 이들은 죽은 사람들이므로 현대에 배우는 역사책에서는 죽은 후에 공식적으로 정해진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제2대 왕인 '공정왕'과 제6대 왕인 '노산군'도 한동안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숙종 때 정종과 단종으로 묘호를 준 적이 있습니다.

 

즉, 연산군, 광해군에게 조, 종이 없는 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폭군이라 하여 왕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 묘호를 정해주지 않은 까닭입니다. 

 

참고로, 묘호란 뜻은 廟號라고 쓰며, "사당의 이름"을 의미합니다. 죽은 사람의 사당이지만, 무덤을 뜻하는 '묘(墓)'와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연산군과 광해군은 후대가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조차 인정되지 않는 왕들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하게 구별이 될 것입니다.



출처

반응형

//

암호명 KT(김대중 납치) 사건의 범인 - KT공작요원의 윤대령(윤진원)과 김동운암호명 KT(김대중 납치) 사건의 범인 - KT공작요원의 윤대령(윤진원)과 김동운

Posted at 2020. 11. 19. 20:13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김대중 납치사건의 범인

 

[암호명 KT(김대중 납치) 사건의 범인 - KT공작요원의 윤대령(윤진원)과 김동운]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이 있었습니다. 진실은 박정희 정부가 정적이었던 DJ를 죽이려고 했던 것임이 모두 밝혀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암호명 KT인 김대중 납치사건의 범인 윤진원(KT 공작요원 윤대령), 김동운(중앙정보부 요원), 이후락(중앙정보부장) 등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된 것은 아닙니다.

 

책임자는 입을 다물고 이제는 당시 관련자들도 세상을 떠나가는 상황... 당시 KT 납치사건에 대해 정리하고, 그 후 범인들에 대한 조사 내용도 정리했습니다.



김대중 납치사건 원인

 

[제7대 대통령 선거] 암호명 KT(김대중 납치) 사건의 범인 - KT공작요원의 윤대령(윤진원)과 김동운 / ⓒ 대통령 기록관 

 

728x90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측은 깜짝 놀라야 했습니다. 선거 결과에서는 약 90만 표의 차이로 승리했지만 이것은 관권, 부정 선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 공정하게 이루어졌다면 '김대중' 후보가 100만 표 이상 앞서서 이겼을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김대중을 그대로 뒀다가는 영구 집권을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그를 제거하려고 시도합니다. 실제로 박정희는 1972년 '10월 유신'을 발표하며 북한의 김일성과 똑같은 영구 독재 정치체제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암호명 KT이란 뜻은 김대중에 대한 공작작전의 이름입니다. 그는 선거 전엔 폭발물 테러를 당했고, 선거 후엔 대형트럭과의 교통사고로 위장된 살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때 골반과 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그는 일본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신이 선포되며 박정희의 정적들이 끌려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 거주하며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를 만들어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박 정권 입장에선 한국의 비민주화가 계속 해외에 알려지니 골치 아픈 일이 되었습니다.



암호명 KT 공작의 진실

[이후락과 박정희] 암호명 KT(김대중 납치) 사건의 범인 - KT공작요원의 윤대령(윤진원)과 김동운 / ⓒ 대통령 기록관 

 

DJ의 존재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박정희는 '이후락'에게 어떻게 해 보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 압력과 여러 실수가 겹치면서 중앙정보부장(당시 한국의 CIA) 이후락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에서 주일 대사관 일등서기관으로 위장 활동하고 있던 중앙정보부 요원 '김동운'은 공작 계획을 지시받았습니다. 이 계획안에 따라 차장보 '이철희'는 윤 대령이라고 불리는 KT 공작요원 '윤진원'과 암호명 KT 공작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전에는 해외공작단장 윤진원, 참사관 '윤영로', 서기관 김동운, 송성채, 유영복, 유충국, 한춘 등이 참여했습니다. 1973년 8월 8일, 도쿄의 그랜드 팰리스 호텔 2210호실 부근에서 벌인 김대중 납치사건의 범인들이 이들이라는 것은 나중에 정식 문서에서 확인됩니다.

습격당한 DJ 김대중이 바로 암호명 KT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납치된 뒤 마취약을 맞은 상태로 옮겨지고, 오사카나 고베로 추정되는 어떤 곳에서 바닷가로 보내졌습니다. 여기에서 그를 기다리던 중앙정보부의 공작선 536톤 '용금호'에 태워지게 됩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정리

 

[일본에 일어난 돌려달라는 시위] 암호명 KT(김대중 납치) 사건의 범인 - KT공작요원의 윤대령(윤진원)과 김동운 / ⓒ Unknown 

 

이중 삼중으로 포박되어 볼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DJ의 귀에는 공포스러운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바다에 상어가 많다느니 던질 때 풀어지지 않게 단단히 묶으라느니하는 말들이었습니다. 몸에 40kg 정도의 추가 달리며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다에 던져서 암살될 위기의 김대중...

나중에 그의 증언에 의하면, 그때 비행기가 그들을 추적해 왔고 배는 비상사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이 일어나고, 그들은 갑자기 포박을 풀어주고 그에게 잘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9시간 만인 8월 13일, 그는 자택 근처에서 풀려나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실제로 비행기가 쫓아와서 수장 계획이 중단되었는지에는 여러 설이 존재합니다. 미국 CIA가 계속 DJ의 안전을 감시했기 때문에 비행기가 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비행 기록은 없지만 실제로는 일본 정보기관의 비행기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쨌든, 김대중 납치사건 정리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 CIA가 납치 사실을 즉각 알았고, 김대중을 살리기 위해서 직접 한국 정부에 전화를 걸어 죽이지 말라는 요청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납치한 배로 한 통의 전화가 왔고, 암호명 KT 공작작전은 작전을 변경하여 그를 풀어주게 되었습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의 범인

 

[기자회견과 용금호] 암호명 KT(김대중 납치) 사건의 범인 - KT공작요원의 윤대령(윤진원)과 김동운 / ⓒ 김대중평화센터 

 

이 사건이 있은 후, 일본은 남의 나라에서 납치 테러를 벌인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해 왔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고, 모든 책임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에게 씌워졌습니다. '김종필'은 이후락이 보고도 없이 갑자기 사건을 저지른 후 나중에 보고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진실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한 나라의 국가 원수가 직접적으로 이름을 대며 죽이라고 명령했을 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저 누구를 처치하라는 은유적인 말로 압박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후락은 박정희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이전에 그는 박정희가 계속 죽이라고 지시했지만 곤혹스러워서 미뤘었다고 말했었습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의 범인인 윤진원은 해외의 공작단 단장이었습니다. 1961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될 때 그는 육군 소령으로서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윤진원은 실미도 특수부대를 창설해서 훈련을 지휘하기도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윤진원 대령은 암호명 KT 작전을 직접 지휘해서 용금호에 실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나중에 육군으로 복귀했으나, 작전이 실패했기에 준장 진급에 실패하고 퇴직했습니다. 하지만 4년 후, 박정희의 특별 지시에 의해 그는 관리관으로 재임용되었습니다.

김동운은 실제 납치를 실행한 인물입니다. 그는 중앙정보부 요원이었지만 주일 대사관에서 일등서기관으로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의 준비물을 보면 호텔에서 바로 김대중을 살해하여 토막 살인을 할 것처럼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윤진원도 김동운도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었기 때문에 바로 죽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일간의 외교 문제로 커지자, 김동운은 외면적으로는 퇴직했습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퇴직 후 바로 복직해서 8국 부단장에 임명되고 정부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당시 암호명 KT작전 인사표를 보면, 윤진원은 복직 또는 취직 알선, 김동운은 보직 변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KT공작요원인 범인들의 그 후

 

[죽다가 살아난 김 전 대통령] 암호명 KT(김대중 납치) 사건의 범인 - KT공작요원의 윤대령(윤진원)과 김동운 / ⓒ 김대중도서관 

 

나중에 김대중은 제15대 대통령이 되고 2000년에 노벨상을 탄 인물이 되니, KT공작원의 암살 실패는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테러 요원들은 직급도 높고 베테랑 정보요원들이었는데 어쩌다가 실패하게 되었을까요?

결정적으로 그들은 베테랑답지 않은 어설픈 납치작전을 했습니다. 납치를 막으려던 다른 사람들에게 한국말로 위협해서 한국인의 소행이란 것이 바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현장에 여러 물품과 지문까지 남겨 놓고 나왔습니다. 테러 중 증거물들을 다른 감시조가 지웠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냥 갔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에서 KT공작요원 윤 대령(윤진원)이 끝까지 함께 하지 않은 것은 사건 직후 잠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대중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은 윤진원은 홍콩을 경유해서 다시 귀국했습니다.

당시 그는 일이 실패하자 국가로부터 배신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윤진원은 자신을 처벌하면 일본에 망명해버리겠다고 버텼고, 결국 국장이 그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한국에 남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전국은 한국의 주권 침해에 화가 났습니다. 미국도 경고 메시지를 띄웠고 한국 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시 암호명 KT 작전을 벌인 인물 중 직접적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역사에서 지워지듯 비밀로 넘겨졌습니다. 그다음 해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보수 정권의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습니다.



출처

반응형

//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조두순 - 4대 살인마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조두순 - 4대 살인마

Posted at 2020. 11. 19. 09:13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조두순 - 4대 살인마] 

미국의 3대 연쇄살인범은 '테드 번디', '찰스 맨스', '게리 리지웨이'입니다. 이들의 행각은 엽기적이라서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범죄인들입니다. 물론 한국에도 공포를 준 연쇄살인마가 있습니다. 한국의 4대 살인마는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조두순이 있는데, 이춘재의 경우 아직 수사 중이라서 제외되기도 합니다. 그 외의 유명한 살인마들은 김대두, 정남규도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까요? 지난 기사들을 정리합니다. 

2016년 전국을 충격에 빠트린 기사가 있었습니다. 1994년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따로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화성살인사건 8차 사건에 윤 모씨 등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이춘재라는 인물이 발견되면서 공소시효도 지난 사건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에는 그 외에도 끔찍한 살인마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조두순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유영철, 강호순 얼굴 공개 수사 검색 [이춘재 강호순 유영철 조두순 지존파 김대두 정남규 정두영] / ⓒ google)

살인마 - 유영철, 강호순 

 

유영철 

 

연쇄살인마 유영철은 1년 동안 20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2003년부터 2004년 체포될 때까지 특정 원한이 없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2003년 서울 신사동에서 2명의 노인을 살해한 이후 종로구에서 3명의 일가족을, 삼성동에서 한 명을 추가 살해하였습니다. 또한 혜화동에서 또 2명을 살해했습니다. 이겨 9월부터 11월까지 겨우 2개월 사이에 있었던 일인데, 유영철의 범행은 다음 해에도 이어졌습니다. 2004년에는 4명의 부유층 노인을 살해했고 출장마사지사 여성도 살해했습니다. 또한 40대 노점상을 살해한 후 잡혔는데, 유영철은 현장검증에서 스스로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중 20명의 살해 범죄는 실제 유죄로 인정돼서 2004년 12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형은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장기미제 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범인이 교도소에 있을 것이라고 예언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728x90



강호순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10명을 살해한 범죄자입니다. 그는 경기도 지역인 수원, 안산, 용인, 평택, 화성, 의왕, 시흥, 오산, 안양, 군포를 돌면서 여성들을 납치해서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그는 군포시의 여대생 살인혐의로 2009년에 검거되었습니다. 추가 범죄에 대한 수사 중에 이미 그가 여성 7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중에는 노래방 도우미, 회사원, 주부, 여대생까지 무차별적인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경기도뿐 아니라 강원도 정선군의 공무원도 죽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장모 집에 불을 질러서 장모와 처까지 죽였다고 합니다. 강호순은 처음엔 범행을 부인했으나 계속된 증거에 의해 자백을 했다고 합니다. 2009년 사형을 받았지만 전혀 뉘우치지 않고 왕처럼 생활하여 더욱 공분을 샀습니다. 



(이춘재, 조두순 얼굴 공개 수사 검색 [이춘재 강호순 유영철 조두순 지존파 김대두 정남규 정두영] / ⓒ google) 

후폭풍 - 이춘재, 조두순 

 

이춘재 

연쇄살인마 이춘재는 2016년 DNA 검사에서 범인으로 의심되자 다시 수사를 받았고, 마침내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고 자백했습니다. 현재까지의 수사 내용으로 보자면, 그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한 후 살해하고 10건의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의 총 사건 수는 1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미성년자 성폭행도 있습니다. 사실 이춘재는 처제 강간 살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아서 장기 복역 중이었는데, 경찰의 추가 조사로 인해 수십 년 지난 범행이 밝혀진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윤 모씨 등이 당시 수사관의 강압적인 수사로 억지 자백을 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더욱 이슈가 되었습니다. 



조두순 

조두순의 범죄는 연쇄살인의 건수보다는 끔찍한 수법과 범행 행태 때문에 더욱 공포에 빠트렸던 범인입니다. 그는 2008년 경기도 안산시의 한 화장실에서 8세 여아를 강간 폭행하였습니다. 주먹으로 폭행을 하고 깨물었으며 목을 졸라 기절하게도 만들었습니다. 그 후 성폭행을 가하여 어린아이의 신체기능이 완전히 망가지도록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처음 선고에서는 징역 12년이 선고되었는데,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했는데 역시 12년이 유지되었습니다. 그의 판결에서는 만취상태에 의한 심신장애로 형량 감형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국민들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 조두순 사건 때문에 유기징역의 상한을 15년에서 30년으로 가중했으며 아동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김대두, 지존파 얼굴 공개 수사 검색 [이춘재 강호순 유영철 조두순 지존파 김대두 정남규 정두영] / ⓒ google) 

 

그 외 김대두, 지존파, 정남규, 정두영 

 

한국의 연쇄살인마 유영철, 강호순, 이춘재, 조두순은 근래에 벌어진 범행이기 때문에 4대 연쇄살인범으로 부르지만 다른 범인을 추가하여 5대 살인마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한국 연쇄살인의 첫 범인인 김대두도 있고 지존파, 정두영, 정남규도 있었습니다. 

 

김대두 

연쇄살인범 김대두는 1975년에 범행을 저질렀는데 겨우 55일 만에 17명이나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전라남도 무안군, 경기도 평택시, 서울 등에서 무려 9차례나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해 10월, 피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는데, 수상하게 생각한 주인이 신고를 하여 검거되었습니다. 김대두는 1976년 사형 선고를 받고 실제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지존파 

연쇄살인마 중에는 범죄단체도 있었습니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일명 지존파는 5명을 연쇄 살해하여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었습니다. 홍콩영화 <지존무상>에서 이름을 따왔다 하여 지존파로 불리는 그들은 당시 22세였던 강동은을 비롯하여 문상록, 김기환, 김현양, 강문섭, 백병옥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인 송봉호와 여성인 이경숙까지 가담한 범죄였습니다. 지존파는 모 백화점의 고객명단을 입수해서 범행대상으로 삼았는데, 길 가던 여성을 목 졸라 죽이고 부부를 납치, 살해했으며 심지어 같은 조직이었던 송봉호까지 살해했습니다. 이들은 잡히고도 사회의 불평등 때문이라며 반성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94년 사형이 선고되어 1995년 실제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정남규, 정두영 얼굴 공개 수사 검색 [이춘재 강호순 유영철 조두순 지존파 김대두 정남규 정두영] / ⓒ google)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몇몇 연쇄살인마는 평소에는 주변 사람들조차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성격이었다는 것입니다. 온순하거나 눈이 띄지 않는 등의 소심한 성격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일부는 폭력성이 인정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정두영, 정남규도 있는데, 정두영,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만 해도 무려 52명의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정두연은 2016년 탈옥을 시도하기도 하고 정남규는 교도소 안에서 자살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4대 연쇄살인마에 정두영,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을 꼽는 경우도 많습니다. 

 


출처

반응형

//

RCEP란 뜻, 국가, 설명 - RCEP와 TPP 차이와 중국, 미국 FTARCEP란 뜻, 국가, 설명 - RCEP와 TPP 차이와 중국, 미국 FTA

Posted at 2020. 11. 18. 16:48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RCE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란 뜻, 국가, 설명 - RCEP와 TPP 차이와 중국, 미국 FTA / ⓒ birgl 

[RCEP란 뜻, 국가, 설명 - RCEP와 TPP 차이와 중국, 미국 FTA]

자유무역협정은 지역이나 경제 관계의 목적에 의해 국가 간에 맺는 협정입니다. 2020년, 한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TPP와 RCEP의 차이는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양쪽이 필요한 입장인데, 미국과 중국의 알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RCEP란 뜻과 국가 정보, 그리고 이 협정이 의미하는 것의 뒷배경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협정의 배경

[환태평양 FTA 대 동아시아 FTA] RCEP란 뜻, 국가, 설명 - RCEP와 TPP 차이와 중국, 미국 FTA / ⓒ geralt 세븐]

 

2010년대 초, 이미 아시아의 국가들이 'ASEAN'이라는 경제 협력 기구를 만들었었습니다. 이 협정은 동남아시아가 주축이고 ASEAN 국가는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이었습니다.

인구는 모두 6억 7천만 명 정도의 거대한 시장입니다. EU처럼 연합체를 구성한 것이지만 강력한 지도국이 없다 보니 아무래도 한계가 컸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 협력체가 필요해졌습니다.

여기에 2010년대 중반, 미국 주도로 태평양 건너편 국가끼리 지역 경제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 추진되었습니다. TPP란 뜻은 이것을 의미하며, 미국을 비롯하여 베트남, 호주, 일본, 싱가포르, 칠레 등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미국이 TPP를 주도한 것은 사실 중국을 경제적으로 포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국이 동아시아의 경제권을 쥐어 잡고 영향력을 키우면 결국 미국은 더 강력해진 중국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미리 막으려는 의도였습니다.

2010년대 후반, 이번엔 중국이 대항 무역협정을 들고나왔습니다. 태평양 건너까지 협정을 맺지 말고 인근 국가들끼리 힘을 강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즉,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지역이 겹치면서 알력이 생긴 것이 TPP와 RCEP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에 트럼프가 오르자 미국이 갑자기 TPP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보호무역주의 정부였기에 다른 나라들을 배타적으로 대했습니다. 오로지 미국만 무역 이익을 봐야 한다는 정책이었으므로 서로 간에 손해와 이익을 공유하는 FTA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RCEP란 뜻과 국가

[RCEP 국가들] RCEP란 뜻, 국가, 설명 - RCEP와 TPP 차이와 중국, 미국 FTA / ⓒ Tiger 7253, 편집 www.kiss7.kr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란 뜻은 지역 포괄 경제 협력관계라는 의미입니다. 이 협정은 중국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자로도 명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域內包括的經濟同伴者協定(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입니다.

이것을 줄임말이 RCEP란 뜻입니다. 즉, 근처에 있는 국가끼리 자유무역협정을 맺자는 말인 것입니다.

함께 알아둬야 할 'FTA(자유무역협정)'이란 뜻은 국가 간 장벽을 없애서 상품, 서비스를 자유로이 거래하자는 협정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베트남에 수출할 때 반드시 "관세"라는 것이 적용되고 상품의 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베트남 현지에서 팔리는 싼 제품과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관세를 없애서 물건이 싸게 되면 거래가 활발할 것인데, 어떤 품목에서는 손해가 나더라도 전체의 무역이 늘어나서 지역 공동체 입장에서는 이익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여기에 중국 주도로 미국에 대항하는 의미로 2020년 협정이 맺어집니다.

728x90

RCEP 국가는 한국, 중국, 일본, 뉴질랜드,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등입니다. 일본은 한참을 저울질하다가 가입했고, 인도는 결국 빠졌습니다.

인구는 약 34억 명이며 GDP는 전 세계의 약 39%나 됩니다. 또한 경제권의 규모로는 전세계 경제권의 약 절반을 차지합니다. TPP는 불안해진 반면, RCEP는 성공적으로 협정을 이룸으로써 미국에 대항할 아시아 경제 그룹이 생긴 것입니다.



RCEP와 TPP - 중국, 미국 FTA와 한국

[RCEP vs TPP] RCEP란 뜻, 국가, 설명 - RCEP와 TPP 차이와 중국, 미국 FTA / ⓒ 未知との遭遇, 편집 www.kiss7.kr 

RCEP란 뜻은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이란 뜻이지만, 지역 내에 있는 모든 국가가 다 같은 입장은 아닙니다. 특히 일본과 인도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일본은 철저히 미국에 붙어서 눈치를 보는 나라여서 과연 일본이 RCEP에 참여할 것인가는 의문이었지만 최종적으로 가입했습니다. 일본이 빠지면 지역 공동체의 모양새가 나빠지기 때문에 중국은 많은 것을 양보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국경 분쟁 등 과거부터 사이가 앙숙이었던 인도는 결국 이를 외면했습니다.

한편,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중국이 많은 것을 양보했기 때문에 한국은 많은 실속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 나름의 조심성이 있는 상태에서 동남아국가들은 아직 한국의 상대가 못되기 때문에 가장 큰 수혜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일본이 가장 큰 수혜국이며, 실속적으로는 한국이 수혜국이 될 것이고, 중국은 미국으로부터의 방어라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RCEP와 TPP 양쪽에 모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하지만 TPP와 RCEP의 차이를 보면 여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다시 TPP를 강화하려고 하면, 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국가들의 결속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개방률이 다른 FTA에 비해 낮은 것도 문제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제조업에 쏠려 있기 때문에 농산물, 서비스업을 연결한 개방 협상이 개방적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한미FTA가 공산품 100%인데 비해 91% 정도밖에 안 되고 농산물은 46%밖에 안 됩니다. 즉, 앞으로도 헤쳐나갈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출처

반응형

//

인류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케터링 버그 - 드론의 역사 1인류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케터링 버그 - 드론의 역사 1

Posted at 2020. 11. 18. 10:01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인류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케터링 버그 - 드론의  역사  1] 

현대는 점점 드론 자체가 생활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드론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보통 드론의 유래라고 하면, 1849년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전투에서 사용된 폭탄 비행선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선 조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드론이라고 보기가 좀 애매합니다.

여왕벌이란 비행기를 최초로 보는 의견도 있지만, 드론이 되기 위한 모든 비행체를 다 포함한다면 인류 최초의 드론에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과 케터링 버그도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드론의 역사는 비행기, 헬리콥터의 역사와 같이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적 드론의 역사

최초의 비행기는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개발된 최초의 무인 비행체 "여왕벌"은 드론의 어머니로 불립니다. 그래서 보통은 1935년을 최초의 드론이 개발된 것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설계도나 최초의 비행선을 제외한 수직 이착륙 드론의 역사를 보자면, 프랑스 '브레게트' 항공사의 최초 쿼드콥터 항공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헬리콥터의 시작이기도 하고 드론의 유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브레게트 형제가 발명한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 [드론 역사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 케터링 버그] / ⓒ Breguet Aviation) 

 

'샤를 리셰' 교수의 도움을 받아서 '브레게트' 형제가 제작한 이 브레게리치 드론은 한가운데에 모터가 있고, 그 외는 강철로 연결된 구조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은 4쌍의 나선형 모양을 가졌는데, 쉽게 말해서 네 개의 날개로 뜨는 헬리콥터인 셈입니다. 즉, 지상에서 수직으로 이륙한 최초의 회전 날개 비행기였습니다.

이 비행체는 회전 '토크 효과'를 없애기 위해서 두 개의 날개는 시계 방향, 다른 두 개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드론이라고 해서 지금과 같은 드론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이로플레인은 높이 3.7m에 무게 500kg, 엔진 46마력을 가진 큰 비행체였으니 말입니다.

이 최초의 드론 비행은 1907년 있었는데, 체육관에서 날려봤으나 높이는 겨우 0.6m에 불과했다고 하니 기대할 정도는 아닙니다. 처음에는 조정할 수도 없어서 하늘로 띄워지면 밧줄로 잡아당겼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원격 조종 기술이 없었으니 당연합니다.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 드론이 네 개의 날개로 떠오른다 [드론  역사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 케터링 버그] / ⓒ Unknown) 

728x90

드론의 유래가 될 자이로플레인은 나중에 1.52m까지 날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비행시간은 겨우 1분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무려 7.85m 크기로 다시 만들었고, 1908년 드디어 첫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1909년 비행에서 심한 폭풍을 만나고 조정 불가능에 빠져서 심하게 망가져 버렸습니다. 인류 최초의 드론인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케터링 버그 드론은 무선 조종된 항공기다 [드론  역사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 케터링 버그] / ⓒ U.S. Air Force) 

브레게리치 드론과 케터링 버그 드론

실질적으로 현대 드론에 더 가까운 역사는 '케터링 버그' 무인비행기였습니다. 이것은 1918년 미국 정부가 무선 이론을 바탕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현대 드론은 원격 조정을 하는 것이니 어쩌면 이것이 진짜 드론 역사의 시작일 수도 있겠습니다.

케터링 버그의 무선 이론에 나오는 테슬라는 테슬라 자동차의 그 '니콜라 테슬라'입니다. 그는 1989년 라디오 음파를 이용해서 모형 보트를 무선 조종에 성공했었습니다.



(케터링 버그는 항공촬영, 폭탄 충돌을 하도록 개발됐다 [드론  역사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 케터링 버그] / ⓒ U.S. Air Force 

 

신기술이 나오면 언제나 전쟁에서 먼저 써먹는다는 역사는 사실입니다. 케터링 버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나왔고, 영국 육군항공 정찰기에 응용돼서 독일군 진영을 항공 촬영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최초의 드론 역사라고 하기에는 현대의 모양과 형태가 너무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케터링 버그는 복엽기 모양의 비행기이며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할 때처럼 활주로를 달려서 앞으로 날아오르는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드론인 자이로플레인이 나온 지 13년이 지나서야 헬리콥터 방식과 무선 조종이라는 조건이 제대로 만나기 시작합니다. 1920년 '에티엔 오브미첸'은 새 쿼드콥터를 개발했습니다. '쿼드콥터'란 4개의 날개를 가진 수직이륙기를 말합니다. 그리고 1921년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당시의 드론은 크기가 컸기 때문에 사람도 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타지 않고 무선 조종이 되는 프로펠러 비행선인 '헬리코스타'도 드론 역사에서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라디오플레인 드론은 사용연습용 목표물이 되었다 [드론  역사  최초의 드론 브레게리치 자이로플레인 케터링 버그] / ⓒ Bill Larkins) 

 

물론 현대의 드론 중에서 군사용은 비행기 형태이기 때문에, 이런 모양까지 다 친다면 케터링 버그와 '라디오플레인'도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라디오플레인은 그 후에 나온 제품인데, 작은 크기와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은 사격 연습용 대상이었으므로 생산 자체가 파괴의 운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드론은 무선 거리의 한계 때문에 넓은 활용도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같은 활용도는 인공위성 네트워크가 갖춰진 199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출처

반응형

//

악기 테레민이란 - 미대사관 원격도청기 사건과 레온 테레민(원리)악기 테레민이란 - 미대사관 원격도청기 사건과 레온 테레민(원리)

Posted at 2020. 11. 17. 11:00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원격도청기 사건과 테레민 악기

악기 테레민이란 - 미대사관 원격도청기 사건과 레온 테레민(원리) Braden Kowitz 

 

[악기 테레민이란 - 미대사관 원격도청기 사건과 레온 테레민(원리)]

악기 중에 '테레민'이란 것이 있습니다. 전자기장을 마치 손으로 만지듯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가수 김건모의 "사랑이 떠나가네"의 도입부에서 애절한 멜로디로 들리는 것이 바로 테레민의 소리입니다. (맨 아래 영상에서 들을 수 있음)

 

그런데 1952년 소련 주재 미대사관 도청사건은 악기 테레민를 발명한 레온 테레민의 도청기 때문에 놀라움을 줍니다. 이 도청기의 원리가 바로 악기 테레민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미대사관 도청장치 사건

1950년대부터 구.소련(현재 러시아)과 미국은 냉전시대를 가졌습니다. 한국전쟁도 어쩌면 이 냉전시대의 혹독한 피해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1952년 소련 주재 미대사관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동안 소련에 의해 미대사관과 미국 사이에 오간 정보가 모조리 도청당했던 것입니다.

 

도청기는 기본적으로 전기가 필요하므로 전자파를 탐지해서 도청장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전기가 필요 없는 도청장치로 7년간이나 미국 대사관을 도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계에 숨겨진 도청장치를 항의하는 미국] 악기 테레민이란 - 미대사관 원격도청기 사건과 레온 테레민(원리) / ⓒ John Rooney 



도청기는 미대사관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 뒤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미국은 도청장치를 발견하고도 대체 어떻게 전기도 없이 도청기를 작동시켰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이미 그때 당시 무선충전기와 비슷한 원리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기 '테레민'의 원리입니다. 악기를 발명한 테레민은 소련의 음향물리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도청기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만들려고 했던 것은 사실 신디사이저였습니다.​

 

728x90

레프 테레민의 악기 테레민

정확히는 '레프 세르게예비치 테레민(또는 레온 테레민 Лёв Сергеевич Термин)'라고 불리던 젊은 물리학자는 어느 날 소련 정부의 근접각 센서에서 힌트를 얻어 '테레민복스'를 만들어냈습니다. 1920년, 그는 첼리스트이기도 했기에 이것을 들고 유럽으로 가서 연주했습니다.

 

악기 테레민의 원리는 전자기장의 간섭을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고주파 발진기에서 전자기장이 오갈 때, 그 사이에 손을 넣어서 방해하면 음이 발생하는 원리입니다. 마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듯한 독특한 전자악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격도청기 발명가의 연주 모습] 악기 테레민이란 - 미대사관 원격도청기 사건과 레온 테레민(원리) / ⓒ Bettmann, Corbis 

 

그 후, 미국에 가져가서 RCA 테레민복스라는 상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전자악기에 비해 연주법이 어려웠기에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38년, 그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정확한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NKVD(KGB의 전신)에 의해 시베리아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샤라샤카 감옥 연구소에서 억지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소련 비밀경찰 책임자 '라브렌티 베이야'가 그를 불렀습니다.

레온 테레민을 부른 베이야는 다짜고짜 탐지를 피할 수 있는 도청기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원격도청기의 원리

당시 소련에서 가장 잔혹한 권력을 가진 베이야가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며 요구하니 레온 테레민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 없는 도청장치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악기 테레민은 도청기 장치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는 멀리 떨어진 전자기파의 간섭과 교란을 이용해서 도청기를 발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도청장치는 시계 뒤에 숨겨진 채 소련의 보이스카우트 단원에 의해 미대사관에 선물로 전해졌습니다. 

 

[원격 도청장치 원리] 악기 테레민이란 - 미대사관 원격도청기 사건과 레온 테레민(원리) / ⓒ migall.com  / 편집 www.kiss7.kr

 

레온 테레민 도청기의 원리는 악기 테레민에 비해 조금 더 복잡합니다. 설명을 하자면... 이 도청장치는 그저 음파에 의해 떨리고 마이크로파를 반사하는 역할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련 첩보국은 미대사관 근처의 다른 건물에서 라디오 마이크로파를 대사관 건물로 쏴서 도청장치가 반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대사관 사무실에 사람이 말을 하고 있다면, 도청장치 안에 있는 얇은 막을 흔들리게 만듭니다. 그러면 이 방해 때문에 도청장치는 음파가 섞인 마이크로파를 반사하게 됩니다. 이것을 밖에 있는 마이크파 수신기로 받아서 음파만 걸러내서 들었던 것입니다.

 

 

레온 테레민과 악기 테레민

확인된 것은 없지만, 만약 미대사관과 미국 정부 사이에서 기밀 내용이 오고 갔다면 아찔한 일입니다. 소련은 1945년부터 미국이 '맨하탄 프로젝트'로 만든 원자폭탄에 대해 다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미국이 광복을 맞은 한국에서 발을 빼고 싶어 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1952년의 소련은 한국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고,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 후 바로 제3차 대전으로 번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큰 사고 없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검은 아테나의 전자파를 손으로 방해하면 소리가 난다] 악기 테레민이란 - 미대사관 원격도청기 사건과 레온 테레민(원리) / ⓒ Aetherwaves 

 

괜히 전자기파 간섭 악기테레민을 만들어서 유명해진 레온 테레민은 그것 때문에 소련 첩보국에 의해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면서 도청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재주를 인정받아서 살아남아 97세까지 장수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악기로 테레민을 성공시키지 못한 아버지는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연주해 주곤 했었는데, 아이들은 성장한 후 소련이 무너지자 이제는 당당하게 아버지의 악기 테레민 연주자가 되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반응형

//

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Posted at 2020. 11. 12. 16:16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존 포브스 내시와 앨리샤 라지

 

존 포브스 내쉬 -John Forbes Nash Jr-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은 '존 포브스 내쉬(또는 존 내시)'입니다. John Forbes Nash Jr는 노벨 경제학상을 탄 수학자입니다. 그는 겨우 스물두 살의 나이에 '내시균형이론'을 발표해서 제2의 아인슈타인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후 45년이나 지난 다음에 노벨경제학상을 타는데, 거기에는 존 내시가 조현병을 앓았었다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리학자이며 아내인 '앨리샤 라지'의 헌신적인 보살핌 속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수학자 존 포브스 내시

세계적인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만유인력의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 등 유명 천재 중에는 조현병을 앓았던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조현병이란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구분에 문제가 생기는 정신질환입니다. 이들에게서는 망상, 환각, 환청, 이상한 행동 등이 나타납니다.

 

존 내쉬와 앨리샤가 결혼한 후, 당시에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조현병이 존 내시를 덮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열렬해서 죽는 날까지 함께 삶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므로 존 포브스 내시의 연구에는 앨리샤 라지의 헌신도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카네기 멜론에 다닐 때] 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 ⓒ Carnegie Mellon University Library 

 

​1928년에 태어난 '존 포브스 내시 주니어'는 16세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장학생으로...

그 후 프린스턴 대학에 박사 과정으로 들어가는데, 당시 지도교수의 추천서에는 단 한 마디만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수학 천재다" 이것만으로도 내쉬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 박사 학위를 위해 27페이지짜리 논문을 제출하는데, 이것이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 준 "내시 균형 이론(비협력게임이론)"입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22세 때였습니다.



[청년 존 내쉬] 존 포브스 내시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 ⓒ Princeton University Archives ​ 

 

그는 성격이 남달랐습니다. 항상 혼자만 돌아다녔고 창문에다가 뭔가를 쓰며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이미 페르마의 정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대학교 때는 교수들도 어려워하는 문제를 풀어냈다고 합니다. 그는 수업 중에도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어떤 때는 토론 중에 갑자기 일어나 나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화학을 하다가 수학이 재밌어서 수학으로 전공을 옮겼고, 국제경제학도 전공하는 등 학습에서는 더욱 남달랐습니다.

 

728x90


앨리샤 라지와의 결혼

그가 발표한 논문의 내쉬이론은 그 자체가 전혀 없던 발상은 아닙니다. 이 이론은 "비협력게임이론"으로 불렸는데, 고전 경제학의 거장인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뒤집는 이론입니다.

개인이 최대 이익을 위해 노력하면 사회 이익도 극대화된다는 게 이전 경제학의 기본 논리었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낸 것이 존 내시의 균형이론입니다.

 

나중에 내쉬 균형이론은 '죄수의 딜레마' 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었고, 사화과학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쳤기에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타게 된 것입니다.

 

[부인 앨리샤 라지와 함께] 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 ⓒ Alicia Larde 

 

그는 MIT 교수가 되어 잘 나갔고 물리학을 공부하던 '앨리샤 라지'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30세가 되던 해, 존 포브스 내시는 조현병 증세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빨간 넥타이를 맨 사람도 봐도 공산주의자가 국가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미국이 음모에 빠져 공산주의자에 놀아난다고 여겼습니다. 신문 기사엔 공산주의자의 암호로 가득하므로 이를 해석해서 잡아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당시는 극냉전시대였기에 '매카시즘'이 극에 달한 때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미국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무차별적인 좌파 누명 씌우기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인물] 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 ⓒ A Beautiful Mind 

 

둘 사이에 아기도 있는데 내쉬가 병원에서 조현병 판정을 받으니 앨리샤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 후 5년간이나 보살폈으나 결국 무너져내리고,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혼을 했다고 앨리샤가 그를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기와 셋이 같은 집에 있지 않을 뿐, 조현병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보살펴 주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7년 후, 앨리샤 라지는 집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존 내시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존 포브스 내시는 계속 정신병원을 입원했다가 퇴원하길 반복했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의 존 내시

존 내쉬는 그렇게 30년 이상을 조현병으로 고생했습니다. MIT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정신장애인이라면서 신용카드조차 만들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조현병이 좋아지는 희소식이 이어졌습니다. 이때는 내시 균형이론을 발표한 지 45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그의 조현병이 나아진 것은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조현증이 좋아지자 그의 동료들이 나섰습니다. 1990년대가 되어 존 내시가 정상이 되었음을 확인한 노벨상위원회는 드디어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결정했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66세 때입니다.



[1994년 노벨상] 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 ⓒ European School of Economics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그는 객석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평생 수학 논리와 방정식들을 연구했지만 내 인생에서 소중한 발견은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 풀 수 없는 사랑의 신비한 방정식이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모든 이유는 당신 덕분이지요"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이런 실존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실비아 네이사'란 기자가 추적한 기사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노년의 내시와 라지] 존 포브스 내쉬 조현병에 걸린 천재 수학자 존 내시와 앨리샤 라지 / ⓒ cnn.com 

 

이후 존 포브스 내쉬와 앨리샤 라지는 다시 재혼해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존 내시는 다시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편미분방정식 분야에 획기적인 업적이 생겼고,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벨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마지막 또한 함께합니다. 존 포브스 내쉬가 88세 되던 2015년, 아벨상을 수상한 후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탔는데, 충돌사고로 두 부부는 창밖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평생의 고난을 함께 해 온 본 내시와 앨리샤 라지는 저세상으로 가는 비극마저도 함께 했습니다.



출처

반응형

//

Trick shot 트릭샷 뜻 - 트릭샷이란 무엇?Trick shot 트릭샷 뜻 - 트릭샷이란 무엇?

Posted at 2020. 11. 10. 13:07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Trick shot 트릭샷 뜻

 

 

Trick shot 트릭샷 뜻 - 트릭샷이란 무엇? - MrPuffin 

 

 

  ?  

Trick shot 트릭샷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방송을 보다 보면 토픽이나 진기명기 등의 영상이 나올 때가 있는데, 저게 가능할까할 정도로 묘기에 가까운 기술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트릭샷의 뜻은 이런 신기한 기술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탁구공을 마구 튕겼는데 컵 안에 들어가게 만든다든지, 일반적이지 않은 동작으로 던져서 농구공을 골인시킨다든지, 멀리서 공을 차서 정확하게 목표를 맞춘다든지, 여기저기 마구 튕기게 해서 목표를 통과시킨다든지 하는 것이 트릭샷이란 것입니다. 

이 말은 그 외에도 여러 경우로 사용되는데, 이를테면 사진을 교묘하게 찍어서 재미를 주는 것도 트릭샷이라고 부릅니다. 물병을 던져 세운다든지 동전이라 카드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도 역시 Trick shot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Trick shot (트릭샷)의 뜻은 Trick(묘기, 재주)과 Shot(발사하다, 시도)의 의미를 가진 합성어입니다. 

 

728x90


그런데 인기가 점점 오르자, 이런 트릭샷만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술을 익히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이 사람들은 수십, 수백 번의 연습을 통해서 기막힌 묘기를 보이곤 합니다. 유튜브 등에서 인기를 얻는 영상들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이런 기술은 수많은 시도에 의해서 성공하는 것이고, 그 전에는 또 수많은 실패를 거듭해야 하기 때문에 트릭샷 기술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기하면서도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과정을 미리 설계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엔 물리학적 원리와 운동역학을 이해해야만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트릭샷이란 의미가 일반적으로 자리잡은 것에는 당구라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선보이는 놀라운 고난이도 기술을 종종 보이자 사람들은 그것을 트릭샷의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골프에서도 타이거 우즈가 엄청난 트릭샷을 선보였고, 축구나 농구 선수들도 미리 계산된 트릭샷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화된 이 단어는 아마추어들도 재미삼아 도전하는 놀이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출처

 

반응형

//

빼빼로데이 유래, 뜻 - 날짜와 일본 포키데이, 선물 매출빼빼로데이 유래, 뜻 - 날짜와 일본 포키데이, 선물 매출

Posted at 2020. 11. 10. 13:00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빼빼로데이

빼빼로데이 pepero day 유래, 뜻 - 날짜와 일본 포키데이, 선물 매출 

 

[빼빼로데이 유래, 뜻 - 날짜와 일본 포키데이, 선물 매출]

사람들이 어쩌다가 스스로 만든 것이 빼빼로데이의 유래입니다. 빼빼로데이 뜻은 날씬하자는 의미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는 사랑하는 사이에 과자를 주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빼빼로를 선물하는 날짜가 되면 매출도 급성장하니, 한 기업의 매출을 잔뜩 올려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와 관련하여 일본의 비슷한 과자 선물 날짜인 포키데이도 알아봅니다.



11월 11일의 기념일

 

[다른 11월 11일도 기억하자] 빼빼로데이 유래, 뜻 - 날짜와 일본 포키데이, 선물 매출 / ⓒ PublicDomainPictures 

 

11월 11일은 원래 "농업인의 날"입니다. 1996년 국가 공인 법정기념일이 되었으니, 빼빼로만 기억하지 말고 함께 기억해 둬야 할 일입니다. 국가의 먹거리를 위해 한 해 동안 고생한 농어민을 기억하자는 날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날은 "가래떡 데이"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날은 "지체장애인의 날"입니다. 빼빼로가 사랑을 전하는 날이라면, 개인적인 수준을 넘어서 사회의 따뜻함을 만드는 날인 것입니다. 1이 네 개나 있는 날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서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씨도 함께 기억합시다.

사실 빼빼로데이의 유래나 뜻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니고 왜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고, 아이들 사이에 그냥 시작된 놀이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나마 추정되는 것은 여중생들이 서로 날씬해지라는 의미로 주고받았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에게는 유독히도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양성평등에 위배되는 유래이기도 합니다. 대체로는 1993년부터 시작했다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빼빼로데이 유래, 뜻, 날짜

[빼빼로데이 선물세트] 빼빼로데이 유래, 뜻 - 날짜와 일본 포키데이, 선물 매출 / ⓒ Jordi Sanchez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기사는 1996년입니다. 다음은 연합뉴스에 나온 기사입니다.

"몸매를 중시하는 청소년, 신세대들이 매년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로 정해 날씬해지기를 기원하는 선물을 주고받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1993년 무렵 영남지방의 한 중학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전국적으로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롯데에서는 이것이 돈벌이에 좋다는 것을 알고 마케팅 광고에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빼빼로데이의 유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빼빼로데이 날짜가 11월 11일이 된 것은 말 그대로 1처럼 날씬해지라는 의미였었습니다. 그래서 여중, 여고생들끼리 주고받던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마케팅에 뛰어들면서 친구들이 주고받는 개념에서 연인끼리 주고받는 날로 변해갔습니다.

 

덕분에 재벌 롯데를 배불리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롯데는 빼빼로데이 앞뒤로 거의 5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해 매출의 거의 절반이 이날 다 팔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민이 푼돈을 보태서 재벌을 먹여살리는 상황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빼빼로데이 선물을 한다며 천몇백 원짜리 과자에 만 원이 넘는 선물 포장까지 하는 유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83년 이후의 기록만 봤을 때, 지금까지 팔린 빼빼로를 전부 이으면 40만km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지구를 10바퀴나 도는 길이입니다. 그중에서 20만km는 11월 11일에 사주는 길이입니다.

 

빼빼로데이의 유래와 뜻이 저렴한 과자로 사랑을 전하는 것에 참뜻이 있다면, 다른 회사의 과자, 또는 다른 먹거리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바꿔볼 만한 일입니다. 과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일본 포키데이와 선물

 

[일본 원조 포키] 빼빼로데이 유래, 뜻 - 날짜와 일본 포키데이, 선물 매출 / ⓒ like_the_grand_canyon 븐]

 

한편 일본에는 "포키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포키&프릿츠의 날(ポッキ&プラッツの日)"라고 부르는데, 빼빼로의 원조인 막대과자 포키를 선물 주는 날입니다. 이것 역시 '글리코'라는 회사가 한국에서의 유행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날입니다.

 

일본의 포키와 한국의 빼빼로를 비교해보면 거의 같습니다. 일본의 포키는 1966년부터 판매했고, 한국의 빼빼로는 1983년부터 판매됐습니다. 그래서 일본 제품을 거의 그대로 베껴 온 것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롯데에선 반발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참고로 일본의 포키는 세계에서 가장 트위터에 많이 언급된 과자로 기네스북에 올라있습니다. 또한 초콜릿 코팅 비스킷 중 세계 매출 1위로 기네스북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 포키데이는 한국만큼 극성을 떨지는 않습니다.

 

한편 한국의 뻬뻬로데이 날짜와 뜻, 유래의 소개가 미국 초등학생 참고서에도 등장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책에서는 빼빼로를 영어로 "In South Korea, Pepero Day is on November 11. It gets its name from a popular candy called Pepero!"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처

반응형

//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Posted at 2020. 11. 6. 08:31 | Posted in 잡동사니
반응형

드루킹 사건 정리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드루킹 사건을 정리하자면,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원이 댓글을 조작했다는 의혹입니다. 여기에 김경수 사건도 정리하자면, 이 드루킹 사건을 지시한 사람이 그였다는 의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당(구.새누리당)에서는 지난 2012년 자신들이 국정원까지 동원해서 댓글 조작 사건을 벌였기에,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것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하고 있으므로, 관건은 법원 판결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핵심이 된 것이 특검의 닭갈비 식사 시간 증명이 되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1심 재판과 2심 재판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 정리합니다. 김경수와 드루킹 관련성의 새로운 국면이기 때문입니다.



댓글 조작 드루킹 사건 정리

2018년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정치 관련 댓글 조작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진보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관해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과거부터 여러 차례 보수정당의 댓글 조작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고 댓글 조작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이상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비방하는 댓글 추천수를 조작한 3명이 민주당 당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 인물로 드루킹이라는 인물이 나타났는데, 드루킹 사건 정리의 핵심은 그가 사용한 '킹크랩'이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검찰, 드루킹 공범 김모 씨와 강모 씨 구속영장 발부]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 ⓒ kukmini.com 

 

킹크랩이란 사람이 로그인하고 클릭하지 않아도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로그인해서 공감 또는 반대를 누를 수 있도록 개발한 것입니다. 이들이 사용한 아이디는 2290여 개, 댓글 조작 수는 2만여 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루킹이 킹크랩을 김경수에게 시연했다는 것까지 연결되면서 김경수가 재판에 휘말렸습니다. 1심까지의 김경수 재판을 정리하자면, 증거보다는 말에 의해 정황상 사실관계가 확인됐다는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김경수는 2년 형을 선고받았고, 상고를 하므로서 2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드루킹, 김경수, 닭갈비 식사

그런데 2심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변했습니다. 1심 때까지만 해도 거의 말에 의해 판결된 재판이었는데, 2심부터는 실질적인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경수와 함께한 수행비서의 동선과 시간이 구글 타임라인에 기록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즉, 검찰 입장에서는 매우 한정된 시간 안에서 드루킹이 브리핑도 하고 독대도 하고 킹크랩 시연까지 다 봤다는 타임라인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검찰은 킹크랩 직원들이 닭갈비 식사를 하러 간 동안 김경수가 킹크랩을 봤다고 주장을 바꾸게 됩니다.



[‘킹크랩 시연’ 검찰주장 무너트린 닭갈비 영수증]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 ⓒ vop.co.kr 

 

하지만 여기에 또 돌발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닭갈비 가게 주인이 당시에 그들이 음식을 포장해 가서 먹었다고 증거까지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자 검찰은 또 주장을 바꾸는데, 포장해왔지만, 김경수는 안 먹고 드루킹과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직원들은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어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1심에서까지는 드루킹 말만 믿고 그냥 공범이라고 했던 것과 달리, 2심에서는 증거에 의해 시간상 불가능한 것을 검찰이 억지로 가능한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내는 상황이므로, 김경수에게 좀 더 유리한 국면이 되었습니다.



김경수와 킹크랩 시연 사건

문제의 핵심은 2016년 11월에 김경수가 드루킹의 킹크랩 시연을 봤느냐 안 봤느냐에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그 이전부터 드루킹과 김경수가 수 백 건이나 메신저로 주고받으며 홍보 활동을 한 것까지 마치 불법인 듯이 퍼트리고 있는데,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선플 및 홍보 활동은 모든 선거에서 ​모든 정치인이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논리대로 한다면 모든 정치인을 다 불러들여서 조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보수 언론은 이것을 왜 퍼트리는가? 아무 생각 없이 기사만 믿는 사람들을 속여넘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김경수의 댓글 조작 유죄를 증명하려면 킹크랩 시연을 보고 지시를 했느냐가 핵심이 됩니다.



[“2007년 한나라당 30억 들여 댓글기계 200대 운용”]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 ⓒ joins.com ​ 

 

 

1심에서 드루킹과 특검 측은 김경수에게 킹크랩 프로그램을 보여주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수정했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문건이 발견되며, 그 프로그램의 변경은 원래부터 그 시점으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니까 김경수를 만나기 전부터 계획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2심에서 또 하나의 반전이 나오는데, 김경수의 지시를 받은 후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는 비율이 1%도 안되게 낮아졌다고 검찰 측에서​ 주장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김경수 측에서 다시 전수조사를 했더니, 문재인 후보 비판 비율이 40%나 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지시를 받았다면 40%나 비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상황입니다.



경남도지사 김경수 사건 정리

1심 재판에서 특별검사는 킹크랩을 재판정에서 시연했습니다. 윈도우 화면과 달리 코드들만 주르륵 지나가는 화면이기에 일일이 설명을 해야 했던 프로그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드루킹은 당시 시연에서 김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만나서 닭갈비를 먹었다던 그날, 드루킹은 김경수에게 별다르게 많은 설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경수가 엄청난 프로그래밍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 건지, 뭔지 몰라도 그냥 예의상 끄덕여 준 것인지도 증명이 되지 않습니다. 즉, 시연을 봤다고 치더라도 주장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1심 '이래도 유죄, 저래도 유죄' 판결…납득 어려워"]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 ⓒ yna.co.kr 

 

이런 새로운 증거들을 보면, 분명히 1심보다는 2심에서 객관적인 증거들이 더 나왔고 김경수에게 유리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앞선 1심 재판에서 부장판사를 맡은 성창호 판사가 드루킹과 특검 측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고, 2심 초반 재판을 맡았던 차문호 부장판사가 킹크랩 시연을 봤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 후 일부 재판부가 바뀌었지만, 2심 재판부도 이어받는다면 불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성창호 판사와 차문호 판사가 사법농단 사건으로 유죄를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친했던 양승태 키즈들이라면서, 정치적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드루킹은 왜 김경수를 엮나?

드루킹이란 김동원의 닉네임을 뜻합니다. '드루킹'의 뜻은 게임 캐릭터인 '드루이드'에 킹을 붙여서 만든 합성어입니다. 그는 파워블로거였으며 친문재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다른 친문재인 사람들과 충돌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경공모'라는 조직을 만들고는 민주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를 아는 회원들은 그가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즐겼다고도 증언하고 있습니다. 즉, 민주당 지지 댓글을 올리면서도 비판 댓글도 올린 것은, 그가 정치계 쪽에서 인정받고 싶어서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닭갈비가 왜 거기서 나와?'…'김경수 vs 드루킹' 2심 중간점검]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 ⓒ imbc.com ​ 

 

특검 측에서는 김경수가 1년 5개월간 매일 드루킹에게 보고를 받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김경수 측은 다른 주장을 합니다. 이전에는 드루킹이 선플 운동을 하는 걸로 알고 다른 정치인들도 그렇듯이 친분을 유지하는 관계였는데, 드루킹이 지인을 오사카 총영사로 밀어주길 원했기 때문에 거절했었다고 합니다.

 

이 주장에 의해 드루킹 김경수 사건을 정리하자면, 드루킹이 이때의 모욕감에 앙심을 품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서로 간의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확인은 불가능합니다. 경공모라는 조직이 허황된 예언이나 미스터리 등을 믿는 조직인 것을 보면, 이상한 사람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김경수가 무죄를 받는다면?

현재 김경수는 댓글 조작 혐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1심에서는 두 가지 모두 김경수에게 불리했으나 2심에서는 댓글 조작 혐의가 김경수에게 확실하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면 본사건 외의 별건 사건 등 여러 가지 조사가 추가로 이뤄지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사건으로 일부 유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건이란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의하는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김경수 ‘재판 족쇄’ 풀고 대권주자 반등할까] 김경수와 드루킹 사건 정리 - 특검과 닭갈비, 법원 판결 무죄? / ⓒ kookje.co.kr 


하지만 김경수가 전체 재판에서 무죄를 받는다면? 그렇다면 차기 대선 구도에서도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현재 양강 구도인 이낙연 Vs 이재명 구도에서 그 균형을 깨는 파급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여당은 대권 주자가 넘쳐나고 야당은 대권 주자를 정하지 못하는 형국이 되므로, 민주당에게 차기 대선이 ​더욱 유리해지는 상황일 것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김경수 재판 2심 부장판사는 함상훈, 김민기, 하태한입니다.

 



출처

반응형

//